[20140208 경향신문] 외국계 은행서 일했던 배순호씨, 키르기스스탄에서 ‘가난한 이들의 은행’ 운동 MET언론보도


경향신문 2014 2 8()사회란

더 좋은 세상 만드는 70 청춘

외국계 은행서 일했던 배순호씨, 키르기스스탄에서가난한 이들의 은행운동

김여란 기자 peel@kyunghyang.com

 

30여년간 외국계 은행에서 일하던 가장이 정년퇴직 3년을 남기고 사표를 썼다. 당시 아들 둘은 대학생, 막내는 재수생이었다. 자식들에게경제적으로 자립하라는 말을 남기고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으로 떠난 아버지는 그곳에서 중증 장애아 대안학교를 세우고, 50달러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마이크로 크레딧 은행을 만들었다. 아들 셋은 20년간 자력으로 대학을 마치고 결혼했다.
배순호씨(73) 27년간 체이스맨하탄은행, 파리국립은행 등 외국계 은행 한국지점에서 일했다. 정년을 3년 앞둔 1995년 당시 아랍은행 부은행장이던 배씨는 키르기스스탄 여행을 떠났다가 뭔가 다른 삶을 꿈꾸게 됐다.

남루한 옷을 입은 노인들이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사과 껍질, 계란 껍데기 따위를 건져내고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내가 저런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면 어떨까, 저들을 위해 여생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신협 키워졸도시소액금융 은행으로 전환

귀국한 뒤 배씨는 한 달간 가슴에 사표를 품고 다니다 결단을 내렸다. 퇴직 뒤 아내와 함께 미국 시카고로 건너가 무디 신학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배씨는 1999 3월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슈케크에 들어가 10년을 살았다.

비슈케크에서 배씨 부부는 가장 먼저 장애인 대안학교를 만들었다. 구소련 핵실험의 여파로 중증 장애아들이 많았지만 당시 국민소득 270달러이던 키르키스스탄 정부에는 관련 복지정책이 전무했다. 장애아동들은 집 안에 방치됐다. 배울 기회도 없었다. 배씨는 현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장애아 40명을 가르치는 학교를 세우고 10년간 대표를 맡았다. 학교는 전액 무료였다. 키르키스스탄 정부 지원은 없었고, 한국 교회와 지인들의 지원금으로 꾸려갔다.

평생 금융인으로 살았던 배씨에게는 열악한 현지 금융 사정이 곧 눈에 띄었다. 시중 은행 대출 이율이 28%에 달했고, 가난한 나라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은행 문턱은 높고 항상 빚에 시달렸다.

배씨는 50여가구를 모아 8000달러 규모로 신용협동조합을 만들었다. 3년 뒤 미국인 선교사 한 명이 8만달러를 투자해 신협을 마이크로크레딧인졸도시은행으로 전환했다. 2006년 자신이 다녔던 한국의 교회에서도 졸도시 소액 은행에 자본참여로  지원했다. 졸도시 은행에서는 민족, 국적과 상관없이 소상공인, 중소기업 위주로 50~5000달러까지 대출을 해준다. 신협 조합장이나 은행장 등 관리자는 모두 현지인들을 채용했고, 배씨는 감사 역할을 했다.

배씨는대출받은 이들이 사업을 시작해 자립하고, 그들이 한 명씩만 고용해도 일자리가 꽤 늘어난다대출해주기 전에는 2주간 꼭 자립정신함양, 납세의 의무, 정직과 근면의 힘, 성실한 가정생활 등 전반적인 인성교육과 생활과 상업에 대한 교육을 받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금융은 기능과 경험의 두 축으로 운영된다. 나처럼 금융기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저개발국에서 소액 신용대출을 통해 봉사할 여지가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2008년 귀국해 이주노동자 도우미로

배씨는 2008년 아내의 건강 문제로 귀국했지만 사는 방식은 키르기스스탄에서 하던 그대로다. 경기 포천에 자리잡은 배씨는 부근 공단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 네팔 등 동남아시아 이주노동자들이 알코올에 중독돼 임금체불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근처 교회에아시아외국인근로센터를 만들었다. 배씨는 소장으로서 5년째 이곳을 찾아오는 이주노동자들과 같이 예배도 보며 같이 먹고, 한글로 가르치고  필요에 따라 병원을 소개해주거나, 임금을 주지 않는 사장을 함께 찾아가는 등 각종 인권상담을 해주고 있다. 매주 이주노동자 30~40여명이 이곳을 찾는다.

저소득층을 위한 마이크로크레딧 활동도 지속하고 있다. 배씨는 2011년 시작된무이자·무담보·무신용의 실험적인 소액신용대출단체 (사단법인) ‘더불어사는사람들창립 멤버이며 지금 이사장으로 섬기고 있다. 키르기스스탄 졸도시 은행의 감사 역할도 온라인을 통해 하고 있다.

노후에 대한 불안은 없을까.

젊은 시절에는 결혼, 자녀 교육, 노후 자금 마련 등 걱정이 훨씬 많았죠. 지금은 아내와 둘이 사는 집 한 채 외엔 아무것도 없지만 전혀 불안하지 않습니다. 저는 은퇴한 게 아니라 계속 일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될 거예요.”

*배순호 장로(전.중동선교회 회장, 현.중동선교회 실행이사, 훈련학교 강사)
 
*출처(경향신문) http://news.zum.com/articles/11557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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