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석 목사 칼럼] 카스피해 주변 나라들 – 이란, 이란인, 이란 선교

1. 이란은 어떤 나라인가?

   1) 이란 개요

   최근 이란 이야기가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중동 땅에 있는 나라로서 대한민국과는 특별히 긴밀한 유대관계가 있는 것 같지 않은 이 나라가 왜 신문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일까? 이란은 알면 알수록 더욱 신비한 나라이다. 현재 이란은 전 세계 시야파 이슬람의 종주국으로서 이슬람권의 주도권을 쟁취하기 위해서 핵무기를 만들려고 한다고 생각된다. 이를 위해서 우라늄 농축시설을 증설하고 있는 이란을 보는 서방세계에서는 수시로 인류 평화를 위해서는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없애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는 이란이 핵무기로 무장한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만일 세계가 침묵하더라도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무장을 묵인할 수 없어 선제공격을 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기에 국제유가가 요동을 치고 있는 현상이 역력하다. 물론 이란은 기회있을 때마다 자신들은 핵무기를 개발할 의도가 전혀 없으며 핵에너지를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자신들의 권리이기에 국제사회가 간여할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나라는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이란의 중요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란은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중동과 아시아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슬람국가이면서도 아랍어권이 아닌 특수한 나라이기도 하다. 이란은 과거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로서 온 세계를 지배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랍인들의 침략에 굴복하여 자신들의 종교인 배화교(조로아스터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랍인들의 종교인 이슬람을 받아들여서 지금은 시야파 이슬람의 종주국 역할을 하고 있다. 이란은 2500년 동안 왕정 통치를 유지해 왔기에 1971년 이란의 쉬라즈에 있는 페르세폴리스에서 세계 각국의 정상들을 초청하여 이란 왕조 2500주년 기념축제를 성대하게 거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79년 호메이니옹에 의해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 ‘이슬람 이란 공화국(Islamic Republic of Iran)’이라는 국호를 채택하고, 마지막 왕조인 팔레비 왕조를 몰아낸 후 원리주의 이슬람 국가로 변신하게 되었다.
    현재의 이란은 남북한 합친 한반도 면적(22만 Km²)의 약 8배의 168만 Km² 정도 되는 넓이에 인구 약 7500만 명 가량이 살고 있으며, 종교는 대부분 시야파 이슬람을 믿고 있다. 기독교 인구는 공식적으로 10만 명 미만 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은 대부분 아르메니아 혹은 아시리아 기독교인들이다. 적지 않은 숫자의 무슬림 출신의 개종자들이 계속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통계상 이들은 기독교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 정확한 숫자는 하나님만 아실 것이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의 경제가 곤두박질하고 있을 뿐 아니라 최근에 핵무기 개발의혹으로 국제적인 외면을 당해 현 정권은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그들이 강요하고 있는 이슬람교 역시 국민적 외면을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란을 지도에서 보면 남북으로 길게 누워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 모양을 하고 있으며 각종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석유자원은 세계 3-4위의 매장량을 자랑하고 있고 천연가스는 세계 2위의 매장량을 기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질 좋은 우라늄의 매장량도 풍부하여 에너지강국다운 면모를 자랑하고 있다. 또한 기후도 다양하여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중동의 사막 기후를 가지는 지역도 일부 있지만, 한 마디로 이렇다고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카스피안에서 테헤란 쪽으로 넘어오는 산등성이에 자리 잡은 디진(Dizin)에는 길이가 7Km 정도에 달하는 대형 스키장이 있다. 열사의 땅이라고 불리는 중동에 천연 스키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이란의 스키장은 유럽 사람들이 스키를 타기 위해서 와서 겨울 휴가를 즐기고 갈 정도로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반면 이란의 남부 반다르 아바스(Bandar Abbas) 지역은 열대 기후를 가지고 있어서 항상 수영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이고 한여름에는 섭씨 50도 가까이 올라가는 살인 더위를 체험할 수 있기도 하다. 이란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회동굴로 자랑하는 알리 싸드르(Ali Sadr) 동굴이 있는데, 그 안에는 약 1시간 정도 보트로 노를 저어가며 구경할 수 있는 수심 최대 14미터에 이르는 호수가 있어 한 번 본 사람은 꼭 다시 오고 싶을 정도로 절경이다. 또한 소금호수로 유명한 이스라엘의 사해 넓이의 6배가 훨씬 넘는 크기에 염도는 사해와 비슷한 우르미에 소금호수가 있어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사람들은 치료효과를 위해 이란을 찾고 있기도 하다.
 

   2) 성경과 초기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본 이란

    이란은 복음과 매우 거리가 먼 중동의 이슬람 국가라고 생각하고 있는 우리들의 일반 상식과는 달리 신구약 전체를 통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나라다. 이란은 성경에서 메대와 바사 혹은 엘람 등으로 표현되어 있는 지역인데 성경적으로나 기독교 역사적으로 볼 때도 매우 중요한 나라이다. 우선 성경적으로 본 이란의 중요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고레스 칙령

    페르시아의 왕이었던 고레스 대왕의 칙령으로 바벨론에 유배되어 있던 이스라엘 포로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성경의 중요한 획을 긋는 사건이다. 인류 역사의 조감도라고 할 수 있는 다니엘의 70이레의 계시도 이 포로귀환 장면을 시작으로 서술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란이 성경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고레스 대왕은 인류 최초로 거의 완벽한 인권 선언을 했던 것으로도 유명한 사람이었다. 지금부터 거의 2500년 전에 국적, 성별, 종교, 인종, 피부색, 언어 등에 관계없이 인류는 어느 누구도 타인을 압제할 수 없고 인류는 모두 평등하다고 선언했던 위대한 나라가 지금은 세계 7대 인권탄압국 명단에서 해마다 언급되고 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절을 막아선 에스더의 남편 아하수에로 왕

    만일 이란의 아하수에로 왕이 에스더의 말을 듣고 하만 장군을 제거하지 않았더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 탄생 전에 전멸될 수도 있었던 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왕 아하수에로의 명령에 의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절시키고자 했던 하만 장군이 오히려 처형을 당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숨을 부지하고 그 후손에 의해서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게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페르시아(이란)의 중요성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3) 동방박사들 중 이란인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메시아 탄생의 기대를 저버리고 고통 중에 신음할 때에 페르시야(이란)에서 출발한 동방 박사가 헤롯 왕궁을 방문하여 메시아 탄생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이들은 귀국하여 이란의 우루미에 지역에 배화교 신전을 개조하여 교회를 만들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지금도 이란에 가보면 우루미에(Urmieh) 시의 하염(Khaiyam) 거리에 켈리써(Kelisa) 골목에 가보면 동방박사의 역사적 유적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남아있다.

     (4) 초대교회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 강림 당시 복음을 들은 이란인들

    초대교회의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 강림 사건을 목도했던 사람들의 목록이 사도행전 2장에 등장하는데, 그들 중 처음 언급되는 세 부류의 사람들 즉 바대 메대 엘람인들이 이란인들이었다. 이들은 처음 방언을 통해서 복음을 들었던 사람들로서 귀국하여 복음을 전하였고, 이란은 이미 초기에 복음이 광범위하게 퍼졌던 나라가 되었다.

     (5) 네스토리안 기독교

    니케아 회의(주후325)에서 삼위일체 교리가 확정되자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면 언제부터인가? 혹은 마리아의 태중에 있을 때도 하나님이었다면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불러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논란이 일어났다.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키릴루스와 콘스탄티노플의 교부 네스토리우스 사이에 데오도코스(Θεοτ?κο?) 교리 즉 “성모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다”는 교리에 다툼이 생기자, 에베소 종교 회의(주후431년)에서 “하나님의 어머니가 아니다”라고 고집했던 네스토리우스는 이단으로 정죄되어 추방된다.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네스토리안이라고 불렀는데, 그들은 이란으로 와서 “나씨빈”이라는 곳에 신학교를 세우고 거기서 배출된 사역자들이 각처에 퍼지게 된다. 그들은 중앙아시아와 중국까지 가서 경교 즉 네스토리안 종교를 전파했다. 우리가 교회사를 배울 때 경교를 이단 종교라고 배웠는데 사실은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다”라는 교리를 가지고 있는 천주교보다 더 복음적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6) 중국 당나라에서 포교했던 네스토리안 기독교(경교)

    주로 이란인들로 구성되었던 네스토리안들은 중국에서 전도하면서 당나라 태종의 윤허를 받아 종교의 자유를 선포하는 경교비(중국에서는 네스토리안 기독교를 경교라고 불렀다)를 세웠다. 지금도 중국의 옛 수도인 서안에 가면 비림이라는 곳이 있는데, 중국 전체에서 비석들을 찾아 모아둔 곳이다. 거기에 경교비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당나라 태종이 대진(중국에서는 로마를 대진이라고 부름)에서 들여온 경교(네스토리안 기독교)를 자유롭게 유행시켜도 좋다고 하는 선언문을 기록한 커다란 돌비석이다.

     (7) 이란에 복음의 빚을 진 한국교회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 삼국이 서로 힘겨루기를 할 때, 신라는 당나라와 동맹을 맺고 백제를 점령하고 이어서 고구려까지 손에 넣게 되는 삼국 통일의 과정에서 당나라와 매우 긴밀한 유대가 있었다. 그 때 당나라는 태종이 이란의 나씨빈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기독교(경교) 선교사들에게 포교의 자유를 선언하여 기독교가 활발하게 전파되고 있었다. 그 때 신라의 사신들은 그들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를 들여왔던 것이 한반도에 기독교가 발을 디디게 된 첫걸음이었고, 그 흔적들이 불국사의 경전에서 발견되어 숭실대학교 기독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이란에 선교의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2. 이란의 한인교회

   1) 테헤란 한인교회 설립 과정

    1974년 3월부터 1년 동안 유엔의 산하기관인 국제식량농업기구(FAO)의 책임자로 테헤란에 파견되어 근무하고 있던 수원 서둔교회 김문협 장로가 이란에 한인교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 당시 이란에는 한인교포가 300명 내외가 거주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이 기술자들이었고 가족을 동반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란이 비록 이슬람 국가였지만 테헤란에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회가 있었고 미국 장로교회 선교부도 주재하고 있었다. 김문협 장로는 예배 장소를 물색하던 중 자신이 머물던 호텔 부근에 살고 있던 한국인 정순경 씨의 집이 넓어 적합할 것 같은데 거기서 모여서 예배를 드려도 될까를 물었다. 놀라운 것은 그가 기독교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집을 예배 장소로 선뜻 허락했다는 것이었다. 김문협 장로가 귀국할 때까지 그의 집은 한인들의 예배 처소로 사용되었고,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신앙생활을 계속하면서 후에 장로가 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이란 주재 한국대사관에는 현시학(玄時學) 대사가 재임하고 있었다. 그의 부친은 목사였으며 이화여대 현영학 교수가 그의 형으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기에 적극적 협조를 받을 수 있었다. 74년 광복절 교포들이 모인 자리에서 김문협 장로는 한국인 교회 모임의 취지를 설명하고 광복절 다음날 미리 정해놓았던 정순경씨 가정에서 어른 12명 어린이 9명이 모여 감격적인 첫 번째 예배를 드렸으며, 이것이 테헤란에 한국인 교회의 태동이었다.
 
  2) 테헤란 한인교회의 사역자들

    76년 6월 7일 테헤란 한인교회 초대 담임목사로 강동수 목사가 부임하였으나 3년 만에 1979년 2월 11일 이란에 이슬람 혁명이 발생했다. 팔레비 왕이 이란을 탈출하였고 호메이니옹이 들어와 강력한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로 탈바꿈하는 이슬람 혁명이 일어났다. 이로 인하여 거리마다 시민군과 정부군 간의 총격전이 벌어져 행인들이 피해를 입는 사태가 발생하자 불안을 느낀 교민들이 급격히 이란을 떠나게 되었다. 그 때 이란에서 사역하던 모든 외국인 선교사들도 강체출국 당하였으며, 강동수 목사도 유학차 79년7월1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더구나 80년 9월21일 이라크의 미그기들이 테헤란 공항을 공습함으로 시작된 이라크와의 전쟁이 8년 동안 지속되는 동안 이란은 급격한 경제적 침체에 접어들게 되었다. 그 동안 한인교회는 소규모로 운영되다가 85년12월 서성주 목사가 테헤란 한인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5년간 사역하다가 90년 말 떠나게 되었다. 그 때 테헤란 한인교회 성도들은 반다르 아바스 건설현장에서 86년부터 사역하다가 4년 만에 추방되어 한국에 있던 이만석 목사를 3대 담임목사로 청빙하였다. 그는 이란 사역 19년 만에 정부에서 비자를 연장해 주지 않아 청춘을 다 바쳐 섬겼던 이란 땅을 2004년 말 떠나게 되었다. 그 후 2012년 현재까지 박철웅 목사, 진태호 목사에 이어 이동호 목사로 벌써 3번째 목회자가 바뀌었으나, 테헤란 한인교회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3. 이란에서의 하나님의 역사
 
   1) 이란의 교회들

    강력한 이슬람 국가 이란에도 교회가 있다. 그들은 이슬람 율법으로 다스리는 이란에서 기독교인으로 살면서 예배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모든 국민들이 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대손손 기독교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종족이 따로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르메니안 족속과 앗시리안 족속들이다. 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기독교인으로 인정을 받는다. 이들 인구는 1986년 필자가 처음 이란에 들어갔을 때 22만5천 명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10만 명이 채 안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예배의 자유가 보장되어 전혀 방해 받지 않고 예배를 드릴 수가 있다. 그러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자유는 그들에게만 보장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란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은 자신들의 모국어로 예배를 드릴 수 있으며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란에는 완전한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종교의 자유에는 자신이 원하는 종교를 자신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이 선택한 종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라도 종교를 바꿀 수 있어야 하는데 이란에서 무슬림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른 종교로 개종할 수 없으며 무슬림들을 개종시키려고 시도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철저한 이슬람의 율법이다. 만일 이 법을 어길 경우에는 ‘모르탇’ 혹은 ‘카피르’라고 하여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되며 최고 사형까지 언도할 수 있다. 2009년 9월에 개정되어 국회를 통과한 이란의 형법에는 배교자를 선천적 배교자와 후천적 배교자로 나누었다. 선천적 배교자는 부모 중의 한 사람이 무슬림이었는데 자식이 타 종교를 믿으면 그는 선천적 배교자로 간주되어 사형에 처한다는 것이며, 후천적 배교자는 부모 중 누구도 무슬림이 아니었지만 자신이 이슬람으로 개종했다가 다시 타종교로 돌아가면 그는 후천적 배교자이기 때문에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기는 했지만 종교지도자(Supreme Leader)의 추인이 없으면 효력을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법이 효력을 발생하지 않는다고 배교자를 사형에 처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판례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전에 배교자를 사형에 처했던 판례가 있기 때문에 판례를 빙자하여 사형언도를 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1년도에 이란 법정에서 유세프 나다르하니(Yusef NadarKhani)라는 기독교 목사 한 사람이 배교자로 사형언도를 받았는데 항소하여 대법원까지 가서 최종 사형을 확정짓는 판결이 났지만 국제사회의 여론을 감안해서 사형집행을 보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란 교회의 온전한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기도해야 할 것이다.
  

2) 이란의 목회자 연쇄 살인 사건

    1994년 1월 19일 이란 하나님의 성회 교단장이신 하이크(Haik Hovsepian) 목사가 온몸에 칼로 수십 차례 찔려 순교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먼저 디버즈(Mehdi Dibaj) 목사의 사건부터 설명하는 것이 순서라고 본다. 디버즈 목사는 조상이 무함마드의 혈통을 이어 받았기에 쎄이엗(Seiyed)이라는 단어를 이름 앞에 붙여 부른다. 그가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것은 이슬람을 모독한 것으로 여겨 그는 여러 가지 이유로 68일간 투옥되었던 일이 있었다. 그러나 2차 투옥은 그 기간이 길어져서 정확히 9년에 하루를 더한 기간 동안 투옥되었다. 그의 투옥 중 1994년 1월 13일 하이크 목사는 옥중 심방을 갔다가 ‘앞으로 10일 이내로 이슬람으로 재개종하지 않으면 사형에 처할 것이다’는 통지서를 받고 순교를 사모하며 행복해 하는 디버즈 목사를 보고 놀라 교회로 돌아와서 온 교인들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전 세계 매스컴에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14일부터 매일 BBC, Voice of America… 등의 해외 방송에서 디버즈 목사의 사례가 구체적으로 언급되면서 이란의 인권 문제가 도마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란 정부는 이 사실에 당황하여 긴급회의를 열고 매스컴에 성명을 발표했다. ‘그런 사람이 있었으나 이미 오래 전에 석방되었고 서방 언론이 이란을 모함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해외에서 방송이 계속되자 1월16일 이란 정부는 옥중에 있던 디버즈 목사를 갑자기 석방시켰다. 온 교회는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기뻐하며 1월 18일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날 디버즈 목사의 석방을 위해서 가장 큰 역할을 했던 하이크 목사가 실종되었다. 가족들은 바로 경찰에 신고하고, 23일 임자 없는 시신을 보관하는 냉동 창고에도 찾아가 보았으나 시신이 들어왔다는 기록은 없었고 혹시 다른 이름으로 들어와 있을 수도 있기에 창고를 다 확인했으나 시신은 찾을 수 없었다. 이에 전 세계 매스컴은 하이크 목사의 실종 사건을 또한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란 정부는 하이크 목사의 집으로 전화로 “냉동보관소에 있는 시신을 확인하라”는 통보를 했다. 가족들이 이미 23일에 시신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으나 연락을 받고 다시 가보니 19일에 시신이 들어왔다는 기록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사진만 있고 시신은 이미 무슬림들의 공동묘지인 베헤쉬테 자흐러(Beheshteh Zahra)에 정부 비용을 들여 안장했다는 것이었다. 보통은 연고자 없는 시신이 발견되었을 경우 냉동 창고에 보관하면서 6개월 정도 신문에 공고를 하고 그래도 연고자가 없을 경우에만 정부 비용으로 장례를 치르는데, 발견 즉시 무슬림 공동묘지에 장례를 치른다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었다. 교회는 강력하게 항의했고 결국 경찰의 철저한 호위 하에 시신을 무슬림 공동묘지에서 아르메니안 기독교 묘지로 옮겨다가 절차에 맞춰 수천 명이 모인 가운데 장례를 치렀다. 그 때 고인과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서 관 뚜껑을 열어 보이는 순서가 있었다. 관 속에는 온 몸이 칼로 난자당한 하이크 목사의 시신이 누워있었다. 그 때 사진을 찍은 사람들은 모두 카메라를 압수당해 필름을 제거당한 후 돌려받았다. 그 날 순교자의 동생 에드워드 목사의 장례식 설교는 비장했었다. “우리는 저의 형님이신 하이크 목사님의 순교를 인해 슬프지만 하나님께서 뜻이 계셔서 불러 가신 줄 믿습니다. 이제 또 누구를 불러 가실 것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를 순교의 제물로 부르신다면 언제든지 할렐루야 아멘 하면서 주님 앞에 갈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만일 범인이 잡힌다면 그 범인을 우리는 미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범인은 악한 자에게 속아서 이용당한 피해자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듯이 우리도 형제들의 죄를 용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라도 우리가 마셔야 할 순교의 잔이 있다면 기꺼이 마실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설교의 내용은 처절한 순교의 다짐이자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고백이었다.
   그 후에 6개월이 채 안되어 하이크 목사의 피의 대가로 석방되신 디버즈 목사가 순교를 당했고, 거의 같은 시기에 복음교단의 교단장이신 터터우스 미카일리안 목사의 순교가 있었다. 그 때 범인이 잡혔는데 그는 “서방 세계가 MKO(해외에서 이란의 재혁명의 꾀하는 단체)를 계속 지원한다면 앞으로도 이란 내 기독교 목사들의 살해는 계속될 것이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 땅을 떠날 것이냐 혹은 그 땅에 머물면서 순교의 잔을 기다릴 것이냐는 갈림길에서 필자를 포함한 이란의 목회자들은 순교의 잔을 택하며 주님을 대면할 때 부끄럽지 않도록 더 열심히 사역을 하기로 다짐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핍박이 심하다고 멈추어서도 안 되며 멈춰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더 강력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지금도 힘차게 전진하고 있다.

 4. 이란 선교의 전망

   1) 이란의 정치적 상황

    이란은 시야파 이슬람의 종주국 역할을 감당하기 원하며 세계 이슬람의 맹주 자리에 오르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핵무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란 통치자들의 생각이다. 이란은 정치적으로 북한과 매우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대한민국을 친미성향의 국가로 분류하여 정치적으로 경계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민간 차원에서의 교류는 매우 활발하다. 축구를 매우 좋아하는 이란 사람들은 한국이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신화를 기록한 것을 두고두고 이야기 하면서 대한민국이 아시아 축구의 체면을 세워주었다고 칭찬이 대단하다. 또한 중동을 휩쓸고 있는 한류 열풍이 이란에 불어 “대장금”, “주몽”, “해신 장보고” 등의 T.V드라마가 시청율 90% 대까지 기록을 경신하며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한국산 전자제품들은 이란 시장을 석권하고 있고 대우와 현대 및 기아의 자동차들은 테헤란 거리를 누비며 대한민국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국 상품들은 품질은 동남아 제품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을 뿐 아니라 유럽 제품들 못지않음에도 가격은 유럽 제품들보다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어 한국에서 만들었다는 것만 확실하다면 무엇이든지 좋아한다. 이토록 이란 국민들은 대한민국을 매우 좋아하지만 정치인들은 친미경향이 있다는 이유로 대한민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란을 방문했던 국제핵사찰단의 2011년 마지막 보고를 통해서 “핵무기를 만들고자하는 시도가 보인다”는 평가가 발표되자,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이란 경제제재를 더욱 강화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 와중에 영국에서 이란 국립은행(Meli Bank)과의 거래를 중단한다고 발표하자 젊은이들은 분노하여 테헤란 시내에 있는 영국 대사관의 담을 넘어 그들의 사택을 침입하여 유리창과 집기들을 부수고 위성안테나를 뜯어 내렸다. 이에 충격을 받은 유럽의 매스컴은 이란제재를 부채질했고, 최근 미국도 이란 국립은행과의 거래를 중단할 뿐 아니라 이란과 석유공급 계약을 맺은 나라들을 압박하여 석유공급 경로를 바꾸고 이란과의 거래를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에 이란이 전 세계 석유 공급량의 35-4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나서자 국제 유가는 폭등했고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대응했다. 상황은 매우 첨예하여 서로 군사적 충돌도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1개월 전만해도 미화 1불당 9800리얄 하던 환율이 2012년 1월 초 17000리얄까지 치솟았다. 하루가 다르게 환율이 뛰어오르고 있다. 이에 대한 이란(Iran) 정부의 입장은 자신만만하다. 앞으로 30년 동안 사용할 미화와 금을 보유하고 있기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장담하지만, 이란 국내 상황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못하다. 사실 이란이 세계 2-3위의 산유국이라고는 하지만 하루 450만 배럴씩 생산하는 원유를 수출해도 경제적으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싼 값으로 원유를 수출하고 비싼 값으로 정제된 휘발유를 수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원유 수출량이 급격히 줄어서 공식적으로는 250만 배럴씩 매일 수출한다고 한다. 이란은 정유시설이 국내 소비량의 60%정도 밖에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40%정도는 수입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환율 급등으로 수입업자들은 비싼 값으로 물건을 사와야 하기 때문에 그 차액을 물가에 반영시키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국민들의 체감 경기는 인내의 한계를 초월하는 지경이 되었다. 국민들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휘발유나 빵을 만드는 밀가루나 보리 가루에 엄청난 정부보조를 해 주던 것을 이제 국가 경제가 극도로 악화되자 더 이상 보조해 줄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아흐마드 네젓 대통령 임기 중에 휘발유 값이 4배-7배(400%-700%) 정도 뛰게 되고 국민의 주식인 빵 값도 3-4배 뛰게 되자, 장바구니에서부터 시작된 국민들의 불만은 현 정권에 대한 불만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더구나 현재 두 번째 임기를 거의 채워가고 있는 아흐마디 네젓 대통령은 핵무기 개발의혹으로 국제 사회의 배척을 받고 있고 국내에서도 국민들이 등을 돌린 상태에서 자신의 입지가 좁아지자, 돌출행동을 통해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었는데 이제는 호르무즈해협의 전쟁불사 태도 역시 그런 행동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 경제가 어려워지자 이란은 국정운영을 위한 예산확보에 어려움이 오자 국민들에게 그 부담을 떠 넘겨 세금을 대폭 인상하게 되었다. 전기세 가스세 수도세 등을 3-4배 인상하자 국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이런 결과로 정권이 바뀌지 않고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국민들은 변화를 강력히 갈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2) 이란의 지하 교회 상황

    현 정권에 대한 국민적인 불만이 오히려 복음전파의 기회가 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슬람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이 정권은 정치나 경제의 원리에 의해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하자 국민들의 종교심에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혁명을 통해서 2500년간 지속되어 오던 왕정을 종식시키고 이슬람 공화국 형태로 나라를 다스려 오면서 이슬람의 가치를 국민들에게 집요하게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 가운데 그들이 강요하고 있는 이슬람의 가치는 국민들에게 오히려 이슬람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은 곧 그들이 강요하고 있는 이슬람에 대한 거부감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철저하게 헌신된 무슬림들이 아니면 이슬람이 자신들에게 행복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대다수의 국민들이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이슬람이 아니라면 대안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고, 그 대안으로 기독교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런 흐름을 타고 해외에서 이란 지역을 향해서 방영하고 있는 이란어 기독교 위성방송은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2012년 초 현재 이란어 권에 24시간 송출되는 기독교 위성방송은 사이프러스 섬에서 방송하는 Sat7-Pars, 그리고 미국에서 방송하는 Mohabbat TV와 Nejat TV 등이 있는데 이들을 통해서 수많은 개종자들이 돌아오고 있다.
    그 결과 이란의 지하교회는 이런 현상의 도움을 받아 자연스럽게 부흥하고 있는 상황이다. 만일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보장되어서 물밀 듯이 몰려나오는 무슬림들의 간증을 생생하게 보도할 수 있다면, 그런 보도에 자극과 격려를 받은 수많은 집단 개종 현상들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자유가 없기 때문에 입에서 입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달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숫자가 무시할 수 없이 많아지자 이란 정부는 지하교회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강력하게 탄압하고 있는 상황이다. 재작년 성탄절에는 약 200여명의 가정교회 지도자들을 체포하여 수개월 동안 가두어 놓고 다시는 복음을 전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고 풀어준 일이 있었다. 그 서약을 거부한 사람들이 아직도 옥중에 갇혀 있는 실정이다. 그 중에 화르싣 화트히(Farshid Fathi)같은 형제가 있다. 그는 온갖 핍박과 고문과 회유에도 흔들리지 않고 옥중에서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 있다. 이 추운 겨울에 난방도 안 되는 시멘트 바닥에서 담요 한 장 덮고 믿음을 지키고 있는 그에게 다니엘처럼 특별한 보호가 요청된다. 이런 사람들의 믿음의 간증들은 손해보기 싫어하고 희생을 회피하는 자유세계의 기독교인들에게 강력한 자극제가 될 것이다. 이들이 속히 석방되도록 절박한 기도가 요청된다.
    이란 내의 지하 가정교회는 빠른 속도로 나오는 수많은 개종자들 덕분에 부흥하고 있으나 그 정확한 숫자가 얼마인지는 하나님만 아실 것이다. 그럴지라도 이란 내에 기독교인들의 숫자가 많이 늘어나지 않는 이유는 개종 후에 종교적인 핍박이 심하게 되자 견딜 수 없어서 이란을 무작정 떠나 외국으로 향하는 이란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3) 이란의 선교 전망과 전략

    이란의 선교는 지금이 황금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어떤 이는 이란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선교사를 한 명 선발한다면 이슬람 혁명을 일으킨 호메이니옹이 당선될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슬람 혁명 이전에 이란에서 팔레비 왕의 우호정책에 힘입어 수많은 서구의 기독교 선교사들이 활동을 해왔지만 별로 열매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슬람 혁명 이후에 강력한 이슬람 홍보 정책에도 불구하고 온 국민들의 마음은 이슬람에 회의를 느끼게 되고 기독교에 긍정적인 관심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란에서 종교의 자유를 완벽하게 보장하고 수천명의 선교사들이 들어가서 마음껏 활동하도록 보장했더라도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30여년 밖에 지나지 않은 이 시점에서 온 국민의 마음을 기독교에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꿀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1) 직접선교보다는 개종자들을 돕는 간접선교

    이란 선교는 사실 외국인들이 들어가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상황이 무르익지 못한 상황에서 억지로 무엇을 한다는 것은 쉽게 드러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사역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외국인들이 들어가서 무슬림들을 전도하지 않아도 개종자들이 스스로 열심히 전도하고 있다. 그래서 굳이 위험부담을 감수해가면서 전도를 하지 않아도 십자가만 옷깃에 부착하고 다니면 밤중에 기독교에 호감을 가진 사람들이 상담을 하러 찾아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상황에서는 자생적인 무슬림 출신의 개종자들을 격려하고 돕는 일이 가장 지혜로운 일이라고 보인다.

     (2) 테헤란 한국인 기독교회를 통한 사역

    테헤란에 있는 한인교회는 이란 전체에서 유일한 한국인 교회이다. 강력한 이슬람 원리주의 정부의 인가를 받아서 공식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교회로서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만을 위한 교회를 고집하기 보다는 좀 더 시야를 넓혀서 그 땅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야 할 것이다. 어떤 행사를 통해서 홍보효과를 노리고 특별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성도들 모두가 평신도 선교사라는 의식을 가지고 그 땅에 거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매일 만나는 현지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그들의 개인적인 형편을 살피면서 필요한 부분들을 돕고 그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실 것이다.
 
     (3) 위성방송을 통한 전파 선교

    이란 정부는 외국인 선교사들에 대해서 결코 우호적이지 못하다. 그러므로 많은 선교사들이 들어가기 보다는 해외에서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 중에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위성방송을 통해서 안방으로 직접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현재 페르시아 창을 향해 24시간 방송되는 3개의 채널(Sat7-Pars, Mohabbat TV, Nejat TV)을 위해 강력한 기도와 후원이 요청된다.

     (4) 이란인 지도자 양성

    지금은 많은 개종자들이 나오지만 그들을 양육할 지도자가 절대부족한 상황이다. 그러므로 이란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이 시급한 상황이다. 영국 런던에 있는 이란인들을 위한 신학교 및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는 Elam Ministry에서 정기적으로 터키를 방문하여 이스탄불에 있는 게딕파샤 교회에서 단기 코스로 사역자 양성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늦은 감이 있지만, 정식 과정을 거쳐 박사학위를 가진 완성된 일꾼들을 길러내어 이란의 정권이 바뀌고 온전한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가 되었을 때 언제든지 들어가서 쏟아져 나오는 개종자들을 모집하여 정식 학위과정의 신학교를 설립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맺는 말       

    결론적으로 이란의 선교사역의 전망은 매우 긍정적이다. 지금도 많은 개종자들이 나오고 있고 앞으로도 이런 흐름은 계속될 것이다. 성경 예레미야 49장에 보면 엘람의 왕권이 무너지고 엘람 사람들이 전세계로 흩어져 엘람 사람들이 이르지 않은 땅이 없을 것이지만, 39절에 보면 끝날에 전 세계에 흩어진 엘람사람들이 돌아올 것을 예언하고 있다. 엘람은 이란의 옛 이름이고 지금도 이란의 서부에 엘람이라는 주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지금 이란의 왕권은 이슬람 혁명에 의해서 이미 무너졌고 이슬람 원리주의 정권의 폭정과 경제 위기 때문에 이란 사람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고, 이들이 이르지 않은 땅이 없을 것이라는 말씀까지 성취되어 있는 상태다. 이란 정부는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해외에 있는 유능한 이란인 일꾼들을 초청하고 있다. 과거를 묻지 않고 무조건 용서할 것이니 귀국하여 조국의 발전을 위해서 자신의 역량을 사용해 달라는 간곡한 요청이다. 지금 해외에는 유능한 이란인 고급인력들이 많이 있다. 심지어는 최첨단 우주과학을 연구하는 NASA(미항공우주국)에도 이란인 연구원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그들은 귀국을 거부한다. 아마 본인은 귀국하고 싶어도 그들의 아내나 딸들이 반대할 것이다. 이슬람에서 여성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해외에서 받는 급여보다도 훨씬 적은 금액을 받게 될 것이다. 이슬람율법에 의해서 통제되고 제한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간곡하고 강력하게 귀국을 호소해도 그들은 이란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끝날에 돌아가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 때는 언론의 자유를 포함한 개인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가 되어 있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지금의 상황으로 보아 그 때가 멀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역사적으로 한 때 이란이 거의 복음화 되었던 때가 있었다. 이란 초대교회사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항상 적대관계에 있었던 로마와 이란이 우호적인 관계로 돌아섰다. 이때를 이란 기독교의 자유 시대(주후379-420)라고 부른다. 그 때 로마에 마루타(Maruta)라는 감독이 있었는데 그는 의사이면서 기독교의 감독의 직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대사의 자격으로 이란을 여러 차례 방문하였다. 그 당시 이란의 왕이었던 야즈드갸르드 1세가 병들었을 때에 그가 치료를 해주었다. 왕이 몹시 고마워할 때 마루타는 기회를 얻어 왕에게 두 가지 청을 했는데 그 첫째는 이란 교회에 자유를 선포하는 것이며, 둘째는 교회 문제를 조정하기 위해서 이란에 감독회의(현재 노회나 총회 역할)를 설립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왕은 이 두 가지 요청을 기꺼이 수락했다. 그래서 주후 409년 이란 교회 성도들에게 자유가 선언되었다. 이 명령에 의해서 핍박 시대에 파괴된 교회들을 재건하고 아무 두려움 없이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옥에 갇혔던 성도들이 석방되고 감독들은 자신의 교구 내에 있는 교회들을 두려움 없이 순회 방문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300년 만에 처음으로 교회가 해로운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게 되었다. 전도를 한다거나 교회 신축을 위해서 허가를 따로 받을 필요가 없었다.(중략)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주후 410년경에 이란에는 약 40여개의 감독교구가 있었다. 매 감독교구에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교인이 적은 교구에는 감독을 파송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이란 각처에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감독교구는 66개까지 증가되었던 때가 있었고, 이란 전역은 교구화 되어 교회는 완전히 든든히 선 가운데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이때는 이란 초대 교회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때의 정확한 성도의 수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이만석, 『아! 내사랑 이란』, 예루살렘 출판사, 2005, pp240-244)

    이란 사람들은 아랍 사람들과 다르다. 특히 이란은 한 때 세계를 제패했던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슬람 혁명 초기에는 이란 사람들이 팔레비 왕정을 몰아내고 이슬람혁명에 성공했다는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했지만, 지금은 그 때 힘차게 박수를 쳤던 자신의 손이 원망스럽다며 후회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동이 트기 직전에 가장 짙은 어둠이 덮인다. 지금 이란의 상황은 동이 트기 직전의 총체적인 어두움이라고 보인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지금이야말로 가장 희망이 보이는 때라고 할 수 있다. 이란 정부에 의해서 정치적 경제적 제도적으로 복음전파의 길이 꽉 막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복음은 사람의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활짝 열어놓으신 사람의 심령의 문은 닫을 사람이 없다. 지금 이란의 영적상황은 추수의 황금기라고 본다. 예전에 팔레비 통치시절 선교사들이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지만, 그 때는 이란 사람들이 마음이 꼭꼭 닫혀 있었기에 20-30년 사역을 해도 한 영혼의 열매를 거두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농부가 낫을 가지고 서 있으면 곡식들이 찾아와서 스스로 베고 어느 자루로 들어가면 되나요 하고 묻는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이란이 복음화 되면 이슬람권에서의 이란의 위상으로 볼 때 그 파급효과는 이슬람권 전역에 복음의 추수현상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5세기 초에 이란 초대 기독교의 황금기를 경험한 이란이 다시 그 영광을 회복할 수 있는 날이 그다지 멀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다만 너무 오래 지체하지 마시고 이 날이 속히 오는 것을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주님께 간구하는 일에 동참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 

  
선교타임즈 2012.06월호
이만석목사 (한국이란인교회)
2012-06-02
http://koreairanianchurch.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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