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석 목사 칼럼] 최초로 꾸란을 소각한 사람은 누굴까

무슬림들의 보복 테러를 접하며 
 

얼마 전 아프간 바그람에 있는 나토 공군기지에서 도서관을 정리하면서 이슬람 서적들을 소각 처분했는데, 그곳에 고용된 아프간 현지인이 소각된 책들 중에 꾸란 사본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여 폭로하면서 사건이 불거졌다.
  

2011년 9월 미국의 테리 존스 목사의 꾸란 소각 시도로 이슬람권의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던 것을 익히 알고 있는 미군 측에서는 사건을 조기 진화하기 위해 미국의 아프간 주둔 사령관인 존 알렌 장군이 백악관 대변인과 함께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아프간 주민들의 분노는 오히려 더 강력하게 표출되었다. 심지어는 파키스탄과 말레이시아까지 그들의 분노에 동참했고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될 기미를 보이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아프간 카르자이 대통령에게 공식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모스크에서는 강경 이슬람 성직자들의 외국인들을 죽이라는 설교가 계속되고 주민들이 들고 나온 현수막에는 “오 알라여! 당신의 재앙을 미국과 나토에 내리사 그들을 파괴하여 재로 만들어 주소서!”라는 섬뜩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강경 이슬람 성직자들과 탈레반의 선동으로 격분한 군중들의 시위로 지금까지 미국인 6명을 포함한 40명을 살해되었지만 아직도 불씨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탈레반은 꾸란을 소각한데 대한 보복으로 자신들이 죽였다고 자랑스럽게 선언했으며, 카불의 치안을 담당한 경찰 최고 책임자 모함메드 씨는 “꾸란을 모독한 자들에 대한 분노를 표하는 시위대를 비난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볼 때 무슬림들이 꾸란을 얼마나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프간 시위 군중들 중에 꾸란을 읽고 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통계에 따르면 아프간 국민의 75%가 문맹이고 군인들의 90%가 문맹이라고 하는데, 자기나라 글도 모르는 사람들이 외국어인 아랍어로 된 꾸란을 읽고 이해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꾸란의 아랍어는 7세기 고대 문어체 아랍어로 되어 있어 현대 아랍어가 능통한 아랍권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데 꾸란을 소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역사상 꾸란을 가장 먼저 불태운 사람은 이슬람의 3대 칼리프였던 우스만(Uthman)이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슬람의 가장 중요한 율법의 기초가 되는 부카리(Bukhari)나 무슬림(Muslim)의 하디스(Hadith)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최초의 꾸란 소각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장인 우마르(Umar)는 어느날 히샴 빈 하킴(Hisham bin Hakim)이 꾸란 25장(Surat al Furqan)을 낭송하면서 기도하는 것을 듣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다름을 발견하고 기도 중에 가서 밟아버리려 했는데 간신히 참으면서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의 겉옷을 잡아당겨 목을 묶어 무함마드에게 끌고 갔다. 그들은 무함마드 앞에서 그 꾸란 구절을 다시 외웠는데 그것을 듣고 무함마드는 “이것도 맞고 우마르가 외운 것도 맞다. 꾸란은 원래 일곱 가지 방식(Seven different ways)으로 계시되었다. 그러므로 각자가 쉬운 방법대로 외우면 된다”고 말했다(Sahih al Bukhari: Volume 3, Book 41, Number 601).

  

가장 뛰어나게 꾸란을 암송한다고 무함마드가 칭찬했던 4명 중의 한 사람인 우바이 이븐 카압(Ubayy b. Ka'b)이 모스크에 들어가 보니 어떤 이가 꾸란을 외우면서 기도를 하는데 자신이 용납할 수 없는 방언(Dialect)으로 꾸란을 외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들어와 또다른 방언으로 꾸란을 외우는 것이었다.

  

그들의 기도가 끝나자 우바이는 그들을 데리고 무함마드에게 가서 그 앞에서 꾸란을 외우게 했다. 그랬더니 무함마드는 그들이 꾸란을 낭송한 방언도 맞는다고 시인하는 것이었다. 그때 우바이의 심중에 의심이 생겼다고 한다. 알라의 사도께서는 그가 의심하자 우바이의 가슴을 치셨는데 그는 땀을 흘리며 알라 앞에 서있는 것처럼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때 알라의 사도께서는 일곱 가지 방언(in Seven dialects)으로 꾸란이 내려왔다고 말씀하셨다(Sahih Muslim Book 004, Number 1787).

  

무함마드가 살아있을 때는 이런 문제들이 발생할 때마다 일곱 가지 방법(Ways) 혹은 방언(dialects)으로 계시가 있었다면서 문제를 덮었지만 무함마드가 죽고 난 후 이 문제를 그대로 안고 갈 수가 없는 상황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무함마드가 죽고 칼리프들에 의해 이슬람 팽창이 속도를 내면서 이라크에 주둔하던 무슬림들과 샴(지금의 시리아 부근) 지역에 주둔했던 무슬림들이 연합 작전을 통해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를 공격하기 위해 모였다. 그 때 이라크 무슬림들이 힘찬 함성으로 꾸란 구절을 외치면서 사기를 과시했다. 그러자 샴 지역에서 출병한 병사들도 꾸란 구절을 외치면서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서로 상대가 부르짖은 꾸란 구절은 꾸란에 없는 내용이라고 항의하는 것이었다. 그때 이 전쟁의 총 지휘자였던 후다이파 빈 알-야만(Hudhaifa bin Al-Yaman)은 그 당시의 칼리프였던 우스만(Uthman)에게 이 사건의 심각성을 하소연하면서 꾸란 통일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자 우스만은 자이드 이븐 타비트를 포함한 4명을 임명하여 우마르의 딸 하프사가 보유하고 있는 꾸란을 참조 편집하여 완성본을 만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꾸라이시(Quraish) 족속 3명을 불러 그들로 하여금 타비트가 만든 완성본을 검토해 보고 동의할 수 없는 것들은 무엇이든 다시 쓰고 꾸라이시 방언이 아닌 것은 모두 꾸라이시 방언으로 고치라 명령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꾸란으로부터 여러 사본들을 만들어 각 지역에 하나씩 보내고 그 외의 꾸란들은 모두 완본이든 조각본이든 발견되는 대로 소각하라고 명령했다. 그후 타비트는 자신이 원본을 만들 때 빠진 구절이 있었는데 후에 수소문해서 찾아냈으며, 그것은 꾸란 33:23절이었다고 고백했다(Sahih al Bukhari: Volume 6, Book 61, Number 510).

  

이것은 AD 623-624년에 있었던 이슬람의 역사적 사건이다. 이슬람의 가장 권위있는 하디스들에 의하면 꾸란의 형성과정에서 몇 가지 중요한 문제점들이 발견된다.

  

첫째는 성질 급한 우마르가 자신이 외우는 꾸란과 다르게 외우는 사람을 보고 그의 목을 묶어 끌고 갔다는 것을 보면 원래 일곱 가지 방식 혹은 방언으로 계시된 꾸란은 서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매우 심각한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이들은 같은 내용의 말을 다른 사투리로 한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무함마드의 장인 우스만과 히샴 빈 하킴은 같은 동네에 살면서 같은 모스크에 다니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해할 수 없는 타 지역 방언을 말했던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는 있지만 뜻이 서로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만일 이해할 수 없었다면 화를 내는 대신 그것이 무슨 내용인가를 물었을 것이다.

  

셋째로 무함마드가 말한 대로 꾸란이 일곱 가지 방언으로 계시되었다면 그 일곱 가지는 모두 알라께서 지브리일 천사를 통해서 정식으로 계시하신 꾸란이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이슬람의 세번째 칼리프인 우스만은 무슨 권한으로 여섯 가지 꾸란을 모두 없애고 한 가지만 남기고 모두 불태웠을까?

  

넷째로 소각된 6종류의 꾸란 내용이 남겨진 것과 똑같았는데 발음만 달랐다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 왜냐하면 우스만이 꾸란의 최초 완성본을 편집했을 때는 발음 기호가 없었고 자음만 있었으며 모음을 붙이는 작업은 그 후 반세기가 지난 AD 700년경에 시작되어 AD 900년경에 완성된 것이기 때문이다(Wikipedia: History of the Quran).

  

다섯째로 일곱 가지 중에서 여섯 가지 종류의 꾸란을 소각했다는 것은 이들이 서로 내용이 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용이 같았다면 소각했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여섯째는 무함마드가 가장 정확하게 꾸란을 암기하고 있다고 칭찬한 압둘라 이븐 마수드가 자신의 꾸란 사본을 불사르게 내어주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한 것을 보면 우스만이 만든 꾸란은 무함마드가 칭찬했던 마수드의 꾸란과는 매우 달랐다(Sahih Muslim Hadith: Book 31 Number 6022).

  

일곱째로 무함마드가 최고의 꾸란 암송가로 칭찬했던 마수드가 가지고 있던 진짜 꾸란은 빼앗겨 불태워졌고, 우마르의 딸 하프사가 보유했던 최초의 수집본도 그녀가 죽은 뒤 소각되었다는 것을 부인하는 이슬람 학자가 없다. 그러므로 지금 무슬림들이 가지고 있는 꾸란은 마수드의 꾸란과도 다르고 하프사의 꾸란과도 다른 것임이 증명된다.

 

여덟째로 수집책임자였던 타비트가 사본을 만들어 각 지역에 보낸 후 빠진 구절이 생각나서 수소문해서 찾았다는데, 그러면 그가 모르는 구절이나 생각이 안 났던 구절은 없었을까? 그는 무함마드가 추천했던 최고의 꾸란 교사 4명 중 포함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아홉째로 우스만 편집본은 무함마드에게 검증을 받지 못했으나, 마수드가 암송했던 꾸란은 무함마드에게 검증을 받고 그의 칭찬을 받았었다(Sahih Bukhari Hadith: Volume 6, Book 61, Number 521).

  

열번째로 꾸라이시 족속 3명이 교정을 볼 때 타비트가 수집한 꾸란 중 그들이 동의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고치고 꾸라이시 방언으로 다시 쓰라고 명한 것을 보면 그 때 많은 내용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Sahih al Bukhari: Volume 6, Book 61, Number 510).

  

그러므로 무함마드가 칭찬했던 마수드의 사본과 그가 인정하던 7가지 꾸란 중 한 가지만 남기고 6가지를 모두 불태운 것, 그리고 최초의 편집본인 하프사의 꾸란을 불태운 것은 진짜 꾸란들을 불태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스만의 꾸란은 무함마드가 죽은(AD 632년) 후에 편집된 것(AD 653-654년)이므로 그에게 검증받은 일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무슬림들은 우스만의 원본을 기준으로 AD 900년까지 보완해서 만들어진 꾸란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진짜와 차이가 있는 것, 즉 가짜일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도 진짜 꾸란들을 수집해서 태운 우스만을 비난하는 무슬림들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꾸란의 사본이 중요한가? 사람의 생명이 중요한가? 세상에 한 권밖에 없는 원본을 태웠다면 그들의 분노를 혹시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책방에 가면 언제든지 원하는 대로 구할 수 있는 꾸란, 그것도 이슬람 역사에 의하면 진짜라는 것을 완벽하게 증명할 수도 없는 꾸란 사본을 고의가 아니라 실수로 태운 것 때문에 많은 사람을 살해했음에도 사과할 생각도 하지 않고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이 내 눈에는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그들에게 오히려 사과를 함으로 그들의 살인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면 생명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마 16:26) 세상의 기본 도덕과 윤리가 어찌 바르게 설 수 있겠는가?

 

 

이만석목사 (한국이란인교회)
2012-03-11
http://koreairanianchurch.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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