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331 조선일보] 러시아, 또 '검은 과부(체첸 출신 무슬림 여성 테러범) 악몽'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 크렘린궁과 가까운 출근시간의 지하철역. 허리에 두른 폭탄을 옷으로 가린 2명의 여성이 또 다른 여성 2명과 함께 지하철역으로 들어섰다. 18~20세로 보이는 이 여성들의 옷 아래로 테러 장비로 보이는 작은 볼트와 쇠막대가 떨어졌다. 29일 아침 모스크바를 2차례 뒤흔든 연쇄 자살폭탄 테러의 범인들이다. 이들의 행적을 포착한 CCTV 화면은 수년 전 끝났다고 믿었던 악몽 속으로 크렘린을 다시 몰아넣었다. '초르나야 브도바', 러시아어로 '검은 과부'를 뜻하는 체첸 출신 여성 테러범들의 '귀환'이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29일 "모스크바 루뱐카·파르크 쿨투리 지하철역 연쇄 폭탄 테러범이 여성 2명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러시아 정부는 검은 과부 공포에 다시 휩싸이게 됐다"고 보도했다. 모스크바 연방보안국(FSB)은 30일 현재 사망자가 39명이며, 여성 테러범 2명 외에 지하철에서 빠져나간 공범 2명을 수배 중이라고 밝혔다.


검은 과부는 2000년대 초 러시아로부터의 분리독립 운동이 격렬하게 벌어진 북(北)카프카스에서 양성되기 시작한 무슬림 여성 테러범들을 지칭한다. 과부라는 명칭은 남편 등 가까운 가족을 러시아군에게 잃고 복수심에 불타는 여성들이 주세력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붙여졌다. 이들은 스스로를 '샤히디(순교자)'라고 부른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러시아군의 눈을 피해 카프카스의 산속에서 주로 훈련하는 이들은 수십명 정도다. 과격 이슬람주의 남성들로부터 폭탄 조립·은폐·폭발 방법을 훈련받은 후 테러 현장에 투입된다"고 보도했다.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에서 러시아군 기지로 돌진한 폭탄트럭 테러(2000년 6월)와 160여명의 사망자를 낸 체첸군의 모스크바 문화극장 인질극(2002년 10월) 등 2000년부터 이어진 검은 과부의 테러는 비행기 폭파 2건을 포함해 적어도 16건에 달한다.

러시아 정부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조금씩 드러나는 모스크바 지하철 테러범의 프로필은 검은 과부의 모습과 일치한다. 휴대전화를 이용해 기폭장치를 가동시킬 정도로 철저하게 훈련받았고, 모스크바에 처음 온 듯 안내 여성을 앞세워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과거 검은 과부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영국 가디언은 "이달 초 러시아군이 체첸 반군의 정신적 지도자로 알려진 세이크 사이드 부르야츠키를 사살한 것에 복수하기 위해 검은 과부가 다시 행동에 나섰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테러 발생 직후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테러리스트는 모두 분쇄될 것"이라며 강력한 대응을 시사했다. 캐나다 가티노에서 열린 G8 외무장관 안보회담에 참석 중인 힐러리 클린턴 (Clinton) 미 국무장관도 29일 "세계는 테러리스트라는 공적(公敵)과 대치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러시아 일부 관계자들은 이번 테러와 알 카에다 조직의 연관설도 제기하고 있지만 CNN은 "알 카에다는 여성의 활동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보도, 가능성이 희박함을 시사했다.



[김신영 기자 sky@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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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게재 일자 201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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