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323 경향신문] 포연은 걷혔지만… '부르카'는 언제쯤 걷힐까


ㆍ이라크·아프간 전쟁서 잊혀진 이름 ‘여성’
ㆍ이라크 여성의원 비율 제자리… 육아휴직 퇴보
ㆍ아프간, 탈레반과 협상 테이블에 ‘여성’은 없어



미국의 이라크 침공 7주년이었던 지난 20일 이라크 여성들이 거리로 나왔다. 여성 운동가인 야나르 모하메드는 “미국은 이라크 여성들의 인권에 대해 손 놓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라크는 지난 7일 총선을 치르면서 새로운 국가로의 발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총선에서도 이렇다할 여성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9년째 전쟁 중인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정부가 탈레반과의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소식에 오히려 ‘여성 억압시대로의 회귀’를 우려하는 상황이다. 사담 후세인 정권에서 탄압받던 이라크 여성들과 탈레반 정권에서 숨죽이고 살아야 했던 아프간 여성들은 ‘전쟁’이라는 폭력 속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전쟁이 끝나고 새 정권이 들어서면 여성들도 새로운 날을 맞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그날’은 쉽게 찾아오지 않고 있다.

# 이라크의 잊혀진 여성들

이라크 총선 후보 6200여명 가운데 여성 후보는 2000여명이었다. 포스터 속의 여성 후보들은 히잡을 두르지 않은 채 얼굴과 손 등을 자연스럽게 드러냈다. 하지만 바그다드의 알 나라인 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마하 사브리아는 “여성 후보들은 자신의 정당의 조건을 맞추기 위해 출마한 것이지 여성 인권을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도 “이번 총선에서 이라크 여성들은 잊혀졌다”고 평가했다. 후세인 정권이 퇴각한 후 국제사회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325호에 따라 이라크 국회의원 가운데 여성 비율을 40%까지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이라크는 2005년 국회의원 가운데 25%를 여성으로 할당한다는 규정을 헌법에 넣었다. 알자지라 방송은 2003년 이후 여성의원 비율이 25%를 넘긴 적은 없다면서 미군 침공 이전보다 이라크 여성들의 삶이 더 나아진 것은 아니라고 20일 보도했다.

이러한 여성 의원 할당제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에서는 남성 대다수가 여성을 성적 대상이나 아이를 낳는 존재로만 여기는 데다 이슬람 율법상 여성의 공개적인 활동이 제한돼 있어 여성들의 ‘가정 밖’ 생활 자체가 제한적이다. 소녀들은 대부분 교육을 받지 못해 문맹률이 높고, 경제적인 이유와 폭력의 위협 때문에 학교를 중간에 그만두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과거 이라크 여성의 인권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었다. 1950년대 아랍권 최초로 여성 장관이 탄생했고, 1952년 설립된 이라크여성동맹이라는 여성단체는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해 활동했다. 1958년 7월에는 일부다처제를 금지하고 이혼 시 여성의 양육권을 보장하는 진보적인 가족법도 제정됐다. 그러나 후세인 정권이 들어선 후 이 가족법에 두 가지 첨부 조항이 달렸다. “이라크는 이슬람 국가이고, 모든 법도 이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슬람 규율에 반하는 어떤 법도 통과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이 조항들은 여성들의 인권을 제약할 수 있는 해석의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이라크여성네트워크의 바스마 알 카티브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총선에서 “가족법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 법이 여성과 가족들을 지켜주는 법”이라고 역설했다.

미국의 침공 이전에는 이라크의 공직에 있는 여성들에게 1년씩 육아휴직이 주어졌다. 7년이 지난 현재 그 기간은 반으로 줄었다. 많은 이라크 여성들은 미국의 침공으로 후세인 정권이 물러나면 이라크가 안정을 되찾을 것이며 여성들도 공개적이고 정치적인 영역에서 역할이 커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포린폴리시는 ‘미국의 정치적 가치’와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의 준비 부족’ 사이의 모순을 가장 먼저 목격한 이들이 이라크 여성들이라고 전했다.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고 교육받은 여성들은 이라크에서 가장 먼저 납치되고 살해됐다. 사브리아 교수는 “현재 이라크의 많은 남성들이 구금돼 있고, 그에 따라 여성들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됐다”면서 “동시에 여성들은 폭력의 위협 속에서 자유로움을 보장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여성과 아이들은 전쟁 속에서 가장 큰 희생을 치른다. 전쟁 이전 바그다드 대학을 졸업한 노라 하미드(30)는 전쟁 후 치안이 불안해지면서 취업을 포기했다. 그는 “내가 대학에 다닐 때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지만 요즘은 내 아이들이 유괴될까봐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아프간 여성들

아프간 여성들 모두가 다시 ‘부르카’를 입어야 할까. 여성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감싸는 부르카는 탈레반 정권의 폭력적인 통치를 상징한다. 2001년 탈레반 정권은 무너졌지만 “지난 8년 동안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려고 했음에도 많은 아프간 여성들이 여전히 폭력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지난 16일 전했다. 특히 지난해 재선에 성공한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을 시도하고 있으며 4월 중에 최종 협의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그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와 탈레반의 제휴는 아프간 여성들의 권리 향상을 가로막을 수 있다. 아프간여성네트워크의 사미라 하미드는 “정부는 여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서 “지난 8년 동안 변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아프간 여성들은 미국과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이 서로 대화를 통해 협상을 할 경우 탈레반의 영향력이 확대돼 곧 여성 억압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강력한 이슬람 율법을 강조하는 탈레반이 아프간 헌법에 보장돼 있는 여성 인권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랄라이 잔(18)은 4년 전 탈레반이 학교를 불지르는 바람에 최근에는 한 가정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잔은 “우리가 공부하고 일하는 것을 그들이 방해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카르자이 측근들은 탈레반과의 협상에서 여성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만, 여성 활동가들은 협상 테이블에 여성의 자리도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미드는 “정부와 탈레반은 같은 신념을 가지고 있다”면서 “그들은 여성이 집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탈레반의 활동이 무장공격 대상에서 민간인을 제외하는 등 다소 부드러워졌다는 분석도 있지만, 여전히 탈레반은 여성을 대상으로 폭력 공격을 시도한다. 또 여성의 사회활동이나 교육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것도 변함이 없다. 탈레반이 장악하고 있는 칸다하르에서는 학교의 3분의 2가 문을 닫았고, 헬만드주에서는 여성 교사들이 살해 위협에 놓여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지난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아프간 여성단체 ‘여성의 목소리’의 수라야 파크자드는 아프간 국회의원 중 25%를 차지하는 여성 의원들이 군벌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고 있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파크자드는 “여성의원들은 자신을 지지해준 군벌에게 전화를 걸어 누구에게 표를 던질지를 묻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그저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68명의 여성 의원이 아닌 능력있는 여성 의원을 원한다”며 “비록 10명에 불과할지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파크자드가 말하는 아프간 여성의 현실은 탈레반 정권 당시와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그는 “전쟁 속에 남편을 잃은 300만명의 여성들에게 가족을 부양할 수 있도록 일자리가 필요하고, 여자 아이에게 강요되는 조혼도 금지돼야 한다”면서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가출한 여성이 가족과 이웃에게 매질을 당하는 경우도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파크자드는 평화협상을 통해 정부에 탈레반이 참여하더라도 이슬람 원리주의를 강화해 여성의 사회활동을 제약하던 과거로의 복귀를 막기 위해서는 협상자리에 여성이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여성 억압 정책 사례

· 8세 이상 여성은 가족·친척을 제외한 남성과의 접촉을 금함
· 부르카를 입지 않은 여성은 가족·친척 남성과 동행하지 않으면 외출할 수 없음
·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말해서는 안됨
· 여성은 하이힐을 신어서는 안됨
· 여성은 외부에 노출되는 아파트 난간 출입 금지
· 여성 사진을 영화나 신문, 책, 간판, 광고 등에 사용할 수 없음
· 모든 지명에는 ‘여성’이라는 단어를 포함할 수 없음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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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게재 일자 201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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