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히스로 공항·파나마 운하도 노렸다"
미국에서 기계공학 공부 "민항기를 미사일로 활용"
빈 라덴에 테러계획 내… 심문과정 183회 고문과 군사법정 아닌 건 논란
"변호사를 불러 달라. 그리고 뉴욕으로 보내 달라."
2003년 3월 파키스탄 경찰에 검거될 때, '9·11 테러의 기획자'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는 이렇게 요구했다.
스스로 '알 카에다 군사위원회 위원장'이라 칭하며, 9·11 테러와 관련해 모든 혐의를 인정한 모하메드가 동료 테러범 4명과 함께 무너진 뉴욕시 맨해튼의 월드트레이드센터(WTC) 자리 인근의 뉴욕 연방법정에 선다. 에릭 홀더(Holder) 미 법무장관은 13일 "9·11 테러에 책임이 있는 자들이 비로소 정의의 심판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검거 당시 모하메드가 밝힌 뉴욕행 '소원'이 폴란드 북부의 CIA(미 중앙정보국) 비밀감옥과 관타나모의 테러용의자 수용소에서의 수감 생활을 거쳐 6년 만에 이뤄진 셈이기도 하다.

베일에 싸였던 쿠웨이트 출신인 모하메드의 30년 테러 행적도 조금씩 드러난다.
모하메드는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 민항기를 '미사일'처럼 활용하는 테러 음모를 추진했다. 그는 1995년에도 필리핀 마닐라에서 조카인 람지 유세프와 함께 미국 민항기 12대와 승객 4000여명을 공중에서 날려버릴 거대 테러 음모를 꾸몄다. 이듬해인 1996년엔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서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이슬람 테러조직 알 카에다에 합류했다고, 뉴욕 타임스는 보도했다.

모하메드는 미국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해 익힌 기술과 서구 사회 경험을 바탕으로, 알 카에다 지도부의 신임을 얻었다. 빈 라덴에게 민항기 10대를 납치해 미국 내 민간 목표물을 노리는 테러 계획을 직접 제안했다. 빈 라덴은 처음엔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좀 더 세밀하게 계획을 작성하도록 했다. 여객기 4대를 납치해 미국 내 건물에 충돌하는 9·11 테러의 서막이었다.
모하메드는 체포된 뒤 영국 히스로 공항과 빅 벤(영국 의회의 시계탑), 파나마 운하 폭파도 계획했다고 밝혔고, 로스앤젤레스·시애틀·시카고 등의 타워와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및 뉴욕증권거래소, 미국 내 핵발전소 타격 계획도 있었다고 시인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암살 음모도 꾸몄다. 2002년 파키스탄에서 납치·살해된 월스트리트저널의 유대계 기자 대니얼 펄(Pearl)은 "나의 축복받은 오른손으로 직접 목을 잘랐다"고 진술했다.
한편 미국 사회는 9·11 테러범을 뉴욕 민간 법정에 세우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를 놓고 논란에 휩싸였다. 9·11 테러 당시 뉴욕시장이었던 루돌프 줄리아니(Giuliani)는 "왜 전범(戰犯)을 민간 법정에 세우느냐"며 오바마 행정부를 공격했다. 미국 ABC방송과 폭스뉴스 등은 "모하메드는 뛰어난 언변으로 부시 행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을 공박하고 지하드(이슬람의 성전·聖戰)의 정당성을 홍보할 것이다. 재판정은 모하메드가 주역인 '서커스'가 될 것"으로 우려했다. 또 모하메드의 자백 대부분이 중앙정보국 비밀 감옥에서 183차례에 걸친 '물고문' 등 가혹한 심문을 거쳐 나온 것이라, 증거 능력에 대한 논란도 일 수 있다.
법무부는 사형 선고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사형을 통해 모하메드와 같은 테러범들은 '순교자(martyr)'가 되는 꿈을 이루게 된다.
이태훈 기자 libra@chosun.com
기사 게재 일자 2009-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