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102 연합뉴스] 재선 성공한 카르자이 대통령은



△아프간대통령 하미드 카르자이(EPA=연합뉴스, 자료사진)



(뉴델리=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부정선거 논란 끝에 아프가니스탄의 두 번째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하미드 카르자이는 아프간 최대 종족인 파슈툰족 출신의 온건 이슬람 정치지도자다.

1980년대 옛 소련군의 침공에 맞선 무장투쟁으로 유명해진 그는 1989년 소련군이 아프간에서 철군하고 무자헤딘의 지원을 받아 구성된 아프간 정부에서 외무차관으로 활동했다.

1996년 탈레반이 집권하면서 한때 파키스탄 페샤와르에서 망명생활을 했던 그는 미국이 2001년 10월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자 망명생활을 접고 귀국했다.

이후 그는 모하메드 자히르 샤 전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새 정부 구성을 시도하기도 했고, 탈레반에 대항하는 북부동맹 사령관으로 병사 4천여 명을 이끌고 탈레반 축출에 앞장섰다.

이런 전장에서의 성과와 신임을 바탕으로 카르자이는 같은 해 12월 과도정부 구성을 위해 독일 본에서 열린 정파 회의에서 44세의 나이에 과도정부 수반으로 추대되면서 아프간 권력의 핵심부로 진입했다.

과도정부 수반이 된 그는 자유시장경제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선언했고 2년 작업 끝에 국왕을 국부로 명시해 상징적 권위를 부여하고 대통령과 부통령을 중심으로 한 행정부, 양원제를 기반으로 한 의회 구성 등 원칙을 담은 민주 헌법을 마련했다.

이처럼 탈레반 정권 붕괴 후 아프간 정부의 안정화를 이끌었던 그는 2004년 치러진 첫 대통령 선거에서 55%가 넘는 지지율로 초대 민선 대통령이 된다.

그러나 지난 5년간의 집권기간 아프간 전쟁 상황이 갈수록 악화하면서 민간인 피해가 급증하고 정부 내에 부패와 무능이 만연하면서 카르자이의 인기는 갈수록 추락했다.

특히 이번 대선을 앞두고 상황이 불리해지자 카르자이 대통령은 민간인 보호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밖으로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사회와 대립각을 세우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또 안으로는 옛 군벌 지도자들과 권력분점 협상을 벌여 지지기반을 넓히는가 하면, 시아파 무슬림의 지지를 얻으려고 아프간 여성계는 물론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쓰고 부부 강간을 합법화하는 '시아파 가족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meolakim@yna.co.kr



기사 게재 일자 2009-11-02



공지사항

KWMA

협력기관

협력기관

협력기관